<?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서툰 날의 기록</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link>
    <description>서툴게 찍고, 끄적인 흔적을 모았다. 
</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8 Oct 2026 13:38:17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ttl>100</ttl>
    <managingEditor>Dravin</managingEditor>
    <image>
      <title>서툰 날의 기록</titl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0B123359CB384608</url>
      <link>https://dravin.tistory.com</link>
    </image>
    <item>
      <title>여행</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9</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264&quot; data-origin-height=&quot;195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JIpz9/btq9yNqZi9J/IhtSGXd3YKBGmp8LsWHqJ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JIpz9/btq9yNqZi9J/IhtSGXd3YKBGmp8LsWHqJ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JIpz9/btq9yNqZi9J/IhtSGXd3YKBGmp8LsWHqJ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JIpz9/btq9yNqZi9J/IhtSGXd3YKBGmp8LsWHqJ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JIpz9%2Fbtq9yNqZi9J%2FIhtSGXd3YKBGmp8LsWHqJ1%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264&quot; data-origin-height=&quot;195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JIpz9/btq9yNqZi9J/IhtSGXd3YKBGmp8LsWHqJ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십 대에 ‘배낭여행을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답할 거다. 친구들이 대학에서 지성을 쌓던 시기에 나는 일찌감치 자퇴하고 일을 했다. 당시 대학생들에겐 방학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 따위를 가는 게 유행이었는데, 내 친구 중에도 유럽으로 미국으로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휴가를 내고 같이 여행을 가자며 친구들이 제안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일을 쉰다는 건 수입이 줄어드는 걸 의미했고 거기에 여행 비용을 더하면 두 배에 가까운 지출을 생각해야 했다. 집에서 받은 용돈을 모아 여행을 가는 친구의 눈엔 월급을 받는 내가 돈이 없어 못 간다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그냥 쉴 수 없다고 말하고 거절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청년 시절, 여행은 내게 일종의 사치품과 비슷한 것이어서 벼르고 별러야 실행 가능한 일이었다. 해외여행은 더욱 그랬다. 돌이켜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버거웠던 내게, 해외여행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던 거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런 내가 해외여행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아내 때문이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시기, 아내는 6개월 일정으로 캄보디아엘 갔다. 이른바 썸녀가 해외로 가버렸으니 마음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우리는 이메일과 편지, 소포를 주고받았지만, 모호한 관계는 내 마음을 흐트러뜨릴 뿐이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마음을 확인하고자 캄보디아에 가기로 했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캄보디아에 가겠다고 하기 전까지 아내는 내 마음을 잘 몰랐다고 했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지, 자꾸 편지를 쓰는지, 자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고. 그런데 갑자기 내가 캄보디아에 온다고 하니 그럼 그렇지 싶더란다. 모호했던 자신의 마음도 그때 기울었다며, 자신을 만나러 온 내 결단이 신의 한 수 였다나.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렇게 캄보디아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툭툭을 탔고 메콩강을 거닐었다. 후텁지근한 바람, 뜬금없이 쏟아지는 스콜, 오토바이 소리와 타는 냄새가 배어있는 프놈펜 거리는 지금 떠올려도 생생하다. 나는 메콩강변에서 마음을 전했고 우리는 서로의 멍에를 매는 사이가 되기로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두 번째 해외여행도 캄보디아로 떠났다. 캄보디아에서 마음을 확인했으니 신혼여행도 캄보디아에 가기로 한 거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유럽 여행 대신, 조금 더 의미 있는 신혼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내가 봉사하던 시골 마을 학교에 찾아가 사람들과 잔치를 벌였고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다. 그곳에서 받은 환대와 사랑은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원동력 중 하나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해외여행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나는, 해외여행이 가장 쉬운 일이라 생각하며 살던 아내를 만나 해외여행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닫게 됐고 경험하게 됐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물론 아이 둘을 낳고 살며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또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지만,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절대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을 꼭 같이 이루어 주겠다며 아내는 적금을 들고 있다. 이 통장이 만기가 되는 날 우리는 배낭을 메고 떠날 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물론 돌아오겠지만.)&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9</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9#entry229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3:56 +0900</pubDate>
    </item>
    <item>
      <title>냄새</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8</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450&quot; data-origin-height=&quot;613&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Le58f/btq9zE8q80X/FJjylUg2iaviv4PLEKaen0/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Le58f/btq9zE8q80X/FJjylUg2iaviv4PLEKaen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Le58f/btq9zE8q80X/FJjylUg2iaviv4PLEKaen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Le58f/btq9zE8q80X/FJjylUg2iaviv4PLEKaen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Le58f%2Fbtq9zE8q80X%2FFJjylUg2iaviv4PLEKaen0%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450&quot; data-origin-height=&quot;613&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Le58f/btq9zE8q80X/FJjylUg2iaviv4PLEKaen0/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영화 기생충은 냄새를 주요한 소재로 사용한다. 계층간 넘을 수 없는 ‘선’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선을 넘을 수 있는 것.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가난의 냄새.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묘한 냄새가 영화 곳곳에서 나를 자극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우리집은 반지하였다. 꽤 오랜시간 살아 제법 익숙해질만 했는데도, 나는 반지하가 끔직히 싫었다. 습하고 축축한 공기,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불쾌했다. 제습기로 습기를 제거하고, 집안 곳곳에 방향제를 두어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그건 가난의 냄새였다는 것을. 나는 이 냄새가 내게 베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면, 행여 이 냄새가 내 몸에서 나지 않을까 늘 신경썼다.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는 습관을 들였고 세탁할 땐 향이 강한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그리고 향수를 뿌렸다. 외출하기 직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꼭 한번 더 뿌리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내 생활습관의 많은 부분은 냄새를 예민하게 생각한데에서 기인한다. 향수나 냄새 탈취제를 챙겨 다니거나 땀이 많이 나는 여름철엔 티셔츠를 챙겨 다니는 것. 땀이 줄줄 흐르는 게 싫어 수영을 인생 운동으로 선택하거나, 땀이 덜 나는 겨울을 편애 하는 것. 평소 청소와 정리는 잘 안하면서도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청소를 시작하는 것. 내 많은 행동의 중심엔 냄새가 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영화에서 주인집 남편 박사장은 운전 기사인 기택을 평가하며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지만,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냄새는 섞일 일이 없는 현실을 적나라 하게 보여준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게 풍겨지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발버둥 치던,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치부를 들킨것 같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결혼하고 얻은 신혼집은 작은 빌라 2층이었다. 다니는 교회 건물이라, 아주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었다. 교회 어른들은 얼른 돈 벌어 큰 집으로 이사가라고 나름 축복의 말을 전했지만, 2층에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 축복이었다. 창문을 열어 타인의 발을 보지 않아도 되고, 비가 오면 물이 찰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이상 반지하 냄새가 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내는 인공 향을 무척 힘들어 했다. 그 이후 향수나 섬유유연제를 모두 버렸다. 아내가 힘들어 한 탓도 있지만, 더이상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 쉽게 버릴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다음달 생활을 걱정하며 전전 긍긍하는 처지이지만, 더 이상 내 냄새가 선을 넘을까 감추고 애쓰며 살진 않는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 삶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단 걸 알기 때문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8</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8#entry228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3:1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꿈</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7</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45&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HiNl/btq9uAMVlI0/O1UXeN1UUEA97uSslcTZz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BHiNl/btq9uAMVlI0/O1UXeN1UUEA97uSslcTZz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BHiNl/btq9uAMVlI0/O1UXeN1UUEA97uSslcTZz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HiNl/btq9uAMVlI0/O1UXeN1UUEA97uSslcTZz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BHiNl%2Fbtq9uAMVlI0%2FO1UXeN1UUEA97uSslcTZz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45&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BHiNl/btq9uAMVlI0/O1UXeN1UUEA97uSslcTZz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이십대의 나는 꿈이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슨일을 하고싶은지 알지못했다.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도 자퇴했다.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모른채 학교를 다니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래보다 조금 일찍 일을 시작했다. 생계를 다 감당해야했던 엄마의 부담을 덜어줘야 했고, 가난에 찌들어 있던 삶이 싫었다. '열심히 일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5년을 일하면서 자본주의의 민낯을 봤다. 경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가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래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협동조합이 눈에 띄었고 막연하게 협동조합에서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자연스레 생협에 마음이 갔고 생협에서 일하고 있던 선배의 제안으로 홍보팀에 입사했다. 당시 나는 기획안 한 장 제대로 쓸 줄 모르는 풋내기였는데, ‘생협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와 '사진기술이 있다'는 두가지 이유로 팀장과 상무이사를 설득해 나를 뽑았다. 자신이 책임지고 가르치겠노라 하고 말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선배와 팀장은 회사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잘하려는 욕심이 많았고 재주도 많았다. 인력이 적고 일이 많은 조직이라 한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일은 범위가 넓고 양이 많았다. 두사람은 나를 혹독하게 일을 가르쳤다. 무엇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기획안이 5~6번씩 까이는건 일상이었고 기사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이 허다했다. 매일같이 신문에서 제목을 베껴 쓰게 했고 매주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게 했다. 나는 가진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힘들어도 고마운 마음으로 일을 배웠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격주로 발행하는 소식지를 만드는 일은 재밌었지만, 일이 많고 고되었다. 마감 때면 늘 야근을 했고 밤을 새운날도 많았다. 늦은 새벽, 퇴근하고 돌아가면 언제나 아이는 울고 있고 아내는 지친 얼굴로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우는 아이를 받아 안고 다시 나와 집 앞을 뱅뱅 돌며 재우곤 했다. 그게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내도 그 힘든 시간을 묵묵히 함께 버텨줬다. 나는 모두의 배려와 사랑을 자양분 삼아 조금씩 자랐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야 한사람의 몫을 제법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에이스는 아니지만, 풋내기에서 벗어 났다고 말할 수 있었다. 기획안의 빨간 줄은 사라졌고, 기사엔 약간의 첨언만 달렸다. 몇년이 지나 두사람은 퇴사했고 나는 팀장이 되어 팀원에게 일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생협에서 5년 6개월을 일하고 지금은 작은 공정무역 회사에서 일한다. 규모가 작은 회사기에 1인 팀으로 홍보, 마케팅에 관련된 모든 일을 혼자서 한다. 사수도 없고 팀원도 없이 넓은 분야의 일을 밀도 있게 해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던 내가 이렇게 일 할 수 있게 된 건, 다 두 선배 덕분이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7</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7#entry227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2:5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집</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6</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1125&quot; data-origin-height=&quot;1701&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31HMX/btq9xMzln9F/V3qsghmsMAj4lEcCmxFOi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31HMX/btq9xMzln9F/V3qsghmsMAj4lEcCmxFOi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31HMX/btq9xMzln9F/V3qsghmsMAj4lEcCmxFOi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31HMX/btq9xMzln9F/V3qsghmsMAj4lEcCmxFOi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31HMX%2Fbtq9xMzln9F%2FV3qsghmsMAj4lEcCmxFOi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1125&quot; data-origin-height=&quot;1701&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31HMX/btq9xMzln9F/V3qsghmsMAj4lEcCmxFOi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나는 성산동 언덕배기 작은 빌라에 산다. 3년 전, 둘째가 다닐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고 있었고 첫째의 초등학교 진학을 고민하며 이사를 생각했다. 아내 일터인 성미산 학교 주변 동네가 산이 가깝고 조용해서 1순위 후보가 되었고 몇번의 탐색 후 이 동네로 이사오기로 마음을 정했다. &lt;br&gt;&lt;br&gt;집을 정하고 고르는 일은 아내가 했다. 풀타임 근무자인 나보다 아내가 비교적 시간이 많았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집을 사는 터라, 전적으로 아내 마음에 드는 집으로 정하는게 맞다 여겼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어느 주말, 괜찮아보이는 집을 찾았다며 함께 가보자고 했다. 아이들을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페달을 밟아 동네에 도착했다. 자전거가 주요 이동 수단이었던 우리에게 언덕은 꽤 장벽처럼 느껴졌지만, 언덕위에 있어 가격이 비교적 저렴 했기에 감수해야 했다. &lt;br&gt;&lt;br&gt;방은 조금 작지만 거실이 커 평수에 비해 집에 넓어 보이는 게 좋았다. 채광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당시 살던 집보다 채광이 좋은편이었다. 필로티 구조 2층, 아래에 아무도 살지 않아서 아이들이 뛰어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빌라 주차장 한켠에 길냥이를 돌보고 있는 흔적도 보기 좋았다. 길에 사는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lt;br&gt;&lt;br&gt;아내는 집을 보고 마음에 쏙 들었는지, 다른집은 보지도 않고 계약하자고 했다. 나는 정말 괜찮겠냐고 여러번 물었지만, 원래 그녀의 쇼핑 스타일이 그러하기에 더이상 보채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했고 성미산 자락에 3년째 살고 있다.&lt;br&gt;&lt;br&gt;이 빌라를 살 때, 주변에선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말리는 이유는 다양했는데 요약하자면, ‘빌라는 자산가치가 없다’는 거다. 빌라는 집 값이 오르지도 않는데 왜 사냐며 전세로 살다가 아파트 청약을 넣으라고 말이다. &lt;br&gt;우리 부부가 경제 관념이나 재테크에 밝지 않지만, 몇가지 원칙은 있다.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을것, 투기를 하지 않을 것. 투자와 투기, 자산소득과 근로소득의 사이에서 명확하게 옳은것이 무언지 결정하기 어렵다면 이건 하지 않겠다는 몇가지 원칙을 세우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집은 사는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생각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어서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애쓸거다. &lt;br&gt;&lt;br&gt;게다가 나는 아파트가 싫다. 대형 단지 아파트는 지어지는 과정에서 일종의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조용하게 일상을 살던 빌라촌에 쳐들어가 재개발의 이름으로 그곳에 사는 이들의 일상을 부순다. 막대한 자본으로 건물과 빌라를 사들이고 힘과 폭력으로 사람을 내쫓는다. 나는 용산에서, 두리반과 궁중족발, 아현동과 녹번동에서 배웠다. 사는 것인 아파트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내쫒는지. 철거를 앞둔 녹번동 빌라촌 사람들의 눈물을 보고 아파트에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lt;br&gt;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파트를 더 지어야 한다고, 아파트를 더 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빚을 내고, 영혼을 끌어 모으라고 말한다. &lt;br&gt;&lt;br&gt;우리 가족은 성미산 자락 작은 빌라에 더 오래 살고 싶다.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마음 쓰지 않고 누구와 어디에서 ‘사는’게 더 중요한 삶. 그곳이 내가 거할 집이다.&lt;br&gt;글 옵션&lt;br&gt; &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6</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6#entry226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2:1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밥</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5</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mjl0s/btq9tJi5x8H/mM1aO52FFSsO5yQTxGsTI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emjl0s/btq9tJi5x8H/mM1aO52FFSsO5yQTxGsTI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emjl0s/btq9tJi5x8H/mM1aO52FFSsO5yQTxGsTI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mjl0s/btq9tJi5x8H/mM1aO52FFSsO5yQTxGsTI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emjl0s%2Fbtq9tJi5x8H%2FmM1aO52FFSsO5yQTxGsTI1%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emjl0s/btq9tJi5x8H/mM1aO52FFSsO5yQTxGsTI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우리는 밥을 참 잘먹는데, 얘는 누굴 닮았지?” 아내와 내가 첫째를 두고 종종하는 대화다. 체중관리 하자고 적게 먹은 적은 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는데. 여전히 우리는 잘먹고 사는데 첫째는 당최 누굴닮아 저렇게 밥을 잘 안먹는지 궁금했다. 첫째는 아기때도 좀 유별났다. 모유를 충분히 빨지 않아 엄마를 꽤 고생시켰는데, 분유는 입에도 대지 않아 하루에도 몇번씩 수유를 했다. 우리의 화두는 늘 애가 배고프지 않을까, 모자르지 않을까? 분유는 왜 안먹지? 고민했고 규칙적인 수유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아이가 원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유를 했다. 이유식도 퍽 신경 썼다. 아내는 온갖 이유식 책을 보며 정성스레 만들어 먹였다. 이유식 기계도 들였다. 아이는 종종 아니, 자주 이유식을 뱉어냈고 충분히 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제 입맛에 맞는 갈은 사과 같은 것만 편애했다. 그런 식습관은 자라면서 계속 이어졌는데, 아이의 지랄발광이 힘겨웠던 우리는 아이에게 맞춰 식사를 제공했다. 김, 치즈, 달걀은 우리 구세주나 다름없다.&lt;br&gt;&lt;br&gt;쟤는 진짜 누구 닮았지? 라고 종종 말하지만, 편식의 기원은 바로 나다. 사실 편식하는 아이를 보며, 반성과 자숙의 태도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엄마의 증언을 빌자면, 유아기의 나는 이유식 속 생선살 따위를 골라 뱉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여튼 이상한건 꼭 닮는다. 생각해보면, 나도 편식하면 빠지지 않는 아이였다. 더구나 편식을 꽤 디테일하게 했는데, 새우와 볶음밥은 좋아하지만, 새우볶음밥은 싫어한다거나, 참기름을 넣은 소고기 미역국만 먹었다. 김치찌개에도 꼭 돼지고기가 있어야 했다. 그래도 내겐 한줄기, 한가닥 희망 같은게 있었다. 제법 긴 시간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란 유년시절이 그렇다. 사촌누나들 덕에 피자 치킨같이 야식을 제일 많이 먹은 시기기도 하지만,(그 때 찐 살은 아직 남아있다.) 편식하는 와중에도 할머니의 된장찌개와 나물 무침, 손맛이 담긴 반찬은 훗날 내 편식의 경계를 허물고 식사의 폭이 넓어지는 데에 큰 몫을 했다. &lt;br&gt;&lt;br&gt;그러나 우리 큰 아이에겐 그럴 기회가 부족하다. 아내와 나 모두 반찬요리를 잘 할 줄 모를 뿐더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 대부분의 식사를 담당하는 아내는 이 상황을 극복하려 친구네 반찬가게에서 이런저런 반찬을 사다가 열심히 먹여보았지만, 대부분의 반찬은 혓바닥에만 살짝 닿았다가 무참히 버려지고 말았다. 너무 애쓰지 말자고 적당히 잘먹는 것 위주로 먹이며 살자고 서로를 위로 했지만, 여전히 빵이나 시리얼, 과일 같은걸로 아침을 때우게 할 때면 미안함과 불편한 마음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다. 아내는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아이에게 채소라도 골고루 먹이고 싶어서 아이가 잘 먹는 볶음밥을 연구하고, 라면 하나를 끓일 때도 채수를 우리고 짜장라면엔 채소를 다져 볶고 소고기도 넣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노력한다. &lt;br&gt;&lt;br&gt;아이를 키우면서 배우는게 참 많다. 동시에 좌절도 많이 한다. 나란 사람의 바닥을 보는것도 지긋지긋하고 아이가 모난 행동을 하거나 못된 말을 할 때면, 다 내 탓인가 싶어 괴롭기도하다. 밥한끼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생각하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밥한끼’가 전부다 싶어, 징징대는 애를 붙들어 앉혀놓고 또 밥을 먹인다.&lt;br&gt;글 옵션&lt;br&gt; &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5</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5#entry225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0:2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셀프 인터뷰</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4</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2000&quot; data-origin-height=&quot;133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08gx/btq9yNExu4A/TPBQtVJhJFaeW1nGSLSLh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I08gx/btq9yNExu4A/TPBQtVJhJFaeW1nGSLSLh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I08gx/btq9yNExu4A/TPBQtVJhJFaeW1nGSLSLh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08gx/btq9yNExu4A/TPBQtVJhJFaeW1nGSLSLh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I08gx%2Fbtq9yNExu4A%2FTPBQtVJhJFaeW1nGSLSLh1%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2000&quot; data-origin-height=&quot;133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08gx/btq9yNExu4A/TPBQtVJhJFaeW1nGSLSLh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인터뷰는 늘 부담이다. 인터뷰이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이 그렇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공감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인터뷰를 좋아하는 건, ‘이야기’를 좋아하는 천성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lt;br&gt;이번 인터뷰는 유독 부담스러웠다. 상대가 인터뷰 경험이 많지 않고 정보가 별로 없어서 사전준비가 부족했다. 오롯이 인터뷰이의 말발에 기대해야 해서 마음을 비우고 인터뷰에 임했다.&lt;br&gt;&lt;br&gt;서울사람은 부모님 양가 모두 3대 이상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아마도 더 오래전부터 서울에서 살았을 거라 추정하지만, 3대 위로는 확인이 불가하다고 했다. 하여튼, 서울사람이라는 별명을 짓게 된 까닭은 친구들로부터 종종 ‘서울깍쟁이’ 라던지 ‘서울 촌놈’으로 불린 기억이 있어서다. 서울 이외의 정서를 잘 알지 못했고 친구들의 사투리나, 서울 외 지역의 환경에 대해 전혀 모르는 ‘촌티’ 나는 발언을 종종 해왔기에, 친구들은 때로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울 촌놈’이라고 부르곤 했단다. &lt;br&gt;&lt;br&gt;서울사람은 이번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한 덕분이 지난 1달간 글에 파묻혀 지냈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마감해야 할 원고가 3개 있었고, 6인의 에세이를 첨삭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진짜 말 그대로 글에 파묻혔다고. 괴로우면서도 이 챌린지가 즐거웠던 건 부족한 글에 공감과 지지, 응원과 인정을 아낌없이 보내준 글동무들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 챌린지는 더욱 괴롭겠지만, 글동무를 떠올리며 또 열심히 참여해 보겠노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lt;br&gt;&lt;br&gt;시즌 2와 비교했을 때 글 형식을 다양하게 구성해야한다는 부담감과 분량이 때문에 걱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제를 정해주는 게 조금 편했다고 한다. 시즌 2 할 때는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점심시간 할 거 없이 굶주린 하이에나 처럼 글감을 찾느라 헤맸는데 이번 시즌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고. 다만 몇몇 주제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는데 그게 좀 많이 아쉬움에 남는다고 했다. 글을 쓸 때 어떤 주제든 서울사람 자신의 삶, 경험에서부터 끄집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조금 부족한 건 아닌가 싶다며.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수월하게 어떤 주제든 수월하게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lt;br&gt;&lt;br&gt;서울사람은 ‘나의 첫 OOO’이란 주제가 가장 재밌었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을 볼 수 있었고, 다 쓰고 나니 찌질했던 기억은 없고 아주 아름답게 미화해 버려서 사람은 정말 제멋대로 기억하는 존재라는 걸 다시 느꼈다고. 그래도 글쓰는 내내 풍부한 감수성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lt;br&gt;가장 어려웠던 글은 ‘최근 읽은 책’에 대한 글이었다. 최근 읽은 책들은 거의 ‘일’과 관련된 책이라 쓸 게 없어서 예전에 읽었던 책에 관해 썼는데, 그 책을 읽으며 백화점 노동자인 엄마를 떠올렸다고. 그 당시 책을 읽고 짧게 감상을 써두었는데, 거기에 글을 덧붙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단다. 동시에 엄마에 대한 감정, 노동자의 처우 문제, 자신이 겪었던 불합리한 일들이 떠올라 쓰면서도 조금 괴로웠다고. 그리고 글 쓰면서 퇴고를 거의 못한 게 가장 부끄럽다고 했다. 타인에게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 늘 강조하는 것인데, 정작 본인은 챌린지 동안 그러지 못해서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이렇게 민낯으로 글을 올려도 받아주는 동지들이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lt;br&gt;&lt;br&gt;서울사람은 제 생각과 지난날의 경험, 어쩌면 누군가에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글로 써낼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남’과 다름없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믿음직한 동지이자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친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이 에게도 쉽게 하기 어려운 내 지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고. 그런 경험이 이 챌린지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이다. &lt;br&gt;&lt;br&gt;마지막으로 챌린지의 ‘꽃’인 줌 모임이 가장 기대된다고 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를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숨기려고 많이 노력했기에 꼭 몰랐으면 좋겠다고. 근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추리력이 높고 영민해서 또 한편으론 불안하다고 했다. 자신만 모른 채 모두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들었다며, 얼른 패를 까보고 싶다고. &lt;br&gt;&lt;br&gt;글쓰기 챌린지를 통해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하고 좋은 글동무를 많이 얻어 든든하다는 서울사람. 시즌 4에서는 글마다 꼭 한 번 이상은 퇴고하고 제출하는 걸 목표로 삼고 싶다고 했다. 과연 그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기대와 동시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lt;br&gt; &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4</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4#entry224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10: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곰탕</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3</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wvJ74/btq9we3ZW7K/m3ApL1rm9khkPENPCQcJB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wvJ74/btq9we3ZW7K/m3ApL1rm9khkPENPCQcJB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wvJ74/btq9we3ZW7K/m3ApL1rm9khkPENPCQcJB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wvJ74/btq9we3ZW7K/m3ApL1rm9khkPENPCQcJB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wvJ74%2Fbtq9we3ZW7K%2Fm3ApL1rm9khkPENPCQcJB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wvJ74/btq9we3ZW7K/m3ApL1rm9khkPENPCQcJB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스텝이 꼬일때가 있죠. 지금은 경험도 쌓이고 대처능력이 생겨 한번 꼬여 넘어져도 툭 털고 다시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직장 생활 3년차땐 많이 어설펐습니다. 3년차때 이제 일도 제법 익숙해서 자기 몫을 하기 시작할 때였고 신입 팀원의 사수가 된 때여서 살짝 기고만장 해 있었어요. ‘나 이제 일 좀 해’ 같은거 말이죠.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러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8천부가 넘는 인쇄물에 오기가 있었거든요. 단순 오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난리가 났어요. 저는 좀 억울했어요. 인쇄물 최종 담당자는 저였기에 결과물은 제가 책임져야 했는데 제게 넘어온 정보가 잘못된 정보여서 오기가 난거에요. 많이 억울했어요. 그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담당자에게 한번 더 물어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거든요.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8천부를 전부 폐기할 순 없어서 오기에 스티커를 붙이기로 결정했죠. 스티커 제작을 하고 택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인쇄물을 살폈는데, 비슷한 수준의 오기를 또 발견했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온갖 자료와 메신저, 사내 게시판을 샅샅이 뒤졌어요. 아뿔싸. 이번엔 명백한 제 오기였습니다. 실수를 했을 경우엔 빠르게, 그리고 투명하게 보고해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 당시엔 그러지 못했어요. 어떻게든 실수를 가리고 싶었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금방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보고하지 않은 죄까지 탈탈 털렸죠. 그래서 스티커를 또 만듭니다. 택배로 받을 시간이 없어, 인쇄소로 달려갔어요. 초겨울이었는데, 스티커를 기다리는 한시간 동안 충무로 인쇄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얼마나 춥던지요. 기온이 그리 낮은건 아니었는데도, 바람이 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어요.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스티커 16,000장을 받아들고, 명동을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그 와중에 배가 고프더라고요. 나 자신에게 어이가 좀 없긴했는데, 뭔가 또 짠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근처에 보이는 식당엘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곰탕 하나뿐이었어요. 한그릇 주문해 파를 한줌 넣어 국물을 먹는데, 따수운 국물 한모금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어요. 그러던 갑자기 말로 할 수 없는 서러움 같은게 밀려왔어요.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던게 부끄럽기도 하고 모든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곰탕 국물이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는 기분이랄까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가게 이름을 봤습니다. 하동관이라는 이름이 보였어요. 그땐 곰탕에 무지해 하동관을 몰랐죠. 곰탕 세계의 정점에 서있는 식당이란걸요. 그 뒤로 틈만나면 곰탕을 먹으러 갔어요. 합정옥, 옥동식, 양평옥, 나주곰탕, 파주옥…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사실 최근에는 시오라멘에 꽂혀있습니다. 요샌 틈나면 시오라멘 투어를 갑니다. 도장깨듯 한집씩요. 뭐 먹을까? 하면 시오라멘 할정도로요. 같은 시오라멘도 면과 차슈, 고명에 따라 너무 다르고요. 반찬으로 뭘 곁들이냐에 따라 또 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반찬은 초생강이에요.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치만, 정말 지치고 힘들 때, 찾는건 역시나 곰탕이더라고요.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이랄까요. 언제 다 같이 뜨뜻한 곰탕 먹으러 가실래요?&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3</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3#entry223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10:09: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늘의 문장 #9</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2</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TZH7N/btq9xKOZIO1/BJvlpNZzBIqrg46DjiNEi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TZH7N/btq9xKOZIO1/BJvlpNZzBIqrg46DjiNEi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TZH7N/btq9xKOZIO1/BJvlpNZzBIqrg46DjiNEi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TZH7N/btq9xKOZIO1/BJvlpNZzBIqrg46DjiNEi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TZH7N%2Fbtq9xKOZIO1%2FBJvlpNZzBIqrg46DjiNEi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TZH7N/btq9xKOZIO1/BJvlpNZzBIqrg46DjiNEiK/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큰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편지와 함께 피아노 모양의 비누를 보내왔다. 마을에서 18년간 운영한 피아노 학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며 말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를 제외한 우리 식구 모두 충격아닌 충격에 휩싸였다.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물을 수 있겠지만, 아내와 나 그리고 첫째 아이에게 피아노 학원 폐업은 아주 큰 사건이다. 아이가 첫날부터 마음에 쏙 들어한 학원이기도 했고, 선생님과 합이 잘 맞아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첫번째 꿈을 가지게 된 곳이기도 하다. 부모인 아내와 나는 까다로운걸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큰 아이가 너무 만족하며 다니니 그야말로 최고의 학원이 아닌가하며 늘 피아노 선생님을 칭찬하곤 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편지 내용과 더불어, 주변 이웃을 통해 들어본 사정은 이랬다. 얼마전 피아노 학원 건물 전체의 주인이 바뀌었고 새로운 주인은 전체를 리모델링 해야하니 건물에 세들어 있는 모든 임차인들을 내보내고 있다고. 원장님은 주변에 이리저리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폐업을 결정하게 되었단다. 18년 동안 이곳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는데, 오죽하면 폐업할까 싶어 마음이 씁쓸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우리 동네는 공동체 마을로 제법 알려져 있는 성미산 마을이다. 자산으로의 가치 보다는 마을이 좋아서, 동네에 살고 싶어서 이주해 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크게 널 뛰지 않고 매물도 거의 없이 안정적인 편이다. 상점들도 마을 분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 제법 오래된 가게도 많다. 그런데 건물주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 둘 주인이 바뀌고 새 건물로 탈바꿈 하고 있다. 몇해전부터 하나 둘 제법 많은 곳에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런곳엔 어김없이 마을과 관계없는 자본이 들어선다. 임차인이 그곳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영업을 해왔고, 마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좋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야 하는게, 자본이 원하는 일인거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꼭 마을 사람들끼리만 잘먹고 잘사는 동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다. 다만 다시한번 관계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혼자서 동네를 돌아다녀도 안심할 수 있는건, 마을 사람과의 관계 덕분이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나를 대신해 아이를 지켜주는 눈이고 마을에 있는 생협은 아이들이 오며가며 마음놓고 들를 수 있는 공간이다. 동네 학원, 식당, 빵집, 카페 곳곳이 그렇다. 하나 둘 늘어나는 공사현장을 보며 건물주가 되지 못한 나를 반성했다.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2</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2#entry222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09:59:4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늘의 문장 #8</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1</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bU8q/btq9tIdolQh/uMKWTE6M1EbbOgQqunjpk0/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ZbU8q/btq9tIdolQh/uMKWTE6M1EbbOgQqunjpk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ZbU8q/btq9tIdolQh/uMKWTE6M1EbbOgQqunjpk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bU8q/btq9tIdolQh/uMKWTE6M1EbbOgQqunjpk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ZbU8q%2Fbtq9tIdolQh%2FuMKWTE6M1EbbOgQqunjpk0%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bU8q/btq9tIdolQh/uMKWTE6M1EbbOgQqunjpk0/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신비의 섬 제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lt;br&gt;&lt;br&gt;제주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신비의 섬 제주. 누가 붙였는지 참, 잘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자연, 태고의 모습이 이랬을까 싶게 남아있는 숲을 보며 이 신비한 풍경을 오래오래 보고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lt;br&gt;&lt;br&gt;어제 당일치기로 제주를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모니터에 제주에 비행기가 2분마다 이착륙하니 2공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광고가 나왔다. 코로나 이후에 제주 여행이 더 많이 늘어서 제주행 비행기가 포화상태라 들었다. 1-20분 지연은 다반사다. 내릴때도 착륙을 못하고 공항 상공에서 항공기가 도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항을 하나 더 지어야 한다고?&lt;br&gt;순간 갸우뚱 했다. 포화나 다름없는 관광객,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 공항을 하나 더 지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오히려 지금 공항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선을 줄여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lt;br&gt;&lt;br&gt;물론 관광객 입장인 나로써는 비행기 값이 저렴하고 노선이 더 많으면 좋긴하겠다만, 그게 제주를 위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에 단일 활주로 공항 중 제주 공항 이용객이 가장 많단다. 시간단 여객 수송실적이 4,100여명이 된다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공항 뿐 아니라 제주 곳곳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숙박시설을 짓는다고 여기저기 난개발이 진행중이고 치솟은 땅값에 원주민들은 외지인에게 땅을 팔기 시작했다. 하수처리장이 과포화돼 정화되지 않은 하수가 바다로 방류되고 있고 쓰레기 매립장도 불어난 쓰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lt;br&gt;&lt;br&gt;몇 해 전 태국에서 유명 관광지를 통제한다는 기사를 봤다. 관광객을 통제해 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하겠다는 거였다. 사람이 많으니 공항을 하나 더 짓자는 광고를 보며 그 기사가 생각났다.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제주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이제라도 멈추고 남아있는 자연을 지키자. 신비의 섬 제주가 ‘신비’하게 남을 수 있게 말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1</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1#entry221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09:59: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늘의 문장 #7</title>
      <link>https://dravin.tistory.com/220</link>
      <description>&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kGV2/btq9AJIpYDO/IxiIFb65Xm8krFMlUgOES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ikGV2/btq9AJIpYDO/IxiIFb65Xm8krFMlUgOES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ikGV2/btq9AJIpYDO/IxiIFb65Xm8krFMlUgOES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kGV2/btq9AJIpYDO/IxiIFb65Xm8krFMlUgOES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ikGV2%2Fbtq9AJIpYDO%2FIxiIFb65Xm8krFMlUgOES1%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 data-image-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ikGV2/btq9AJIpYDO/IxiIFb65Xm8krFMlUgOES1/img.jpg&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김포공항&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처음 김포공항에 온 건 (아마도) 6-7살 정도 때 였을거다. 고모네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가던 날, 배웅하러 나온게 첫 기억이다. 당시 주변엔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나 또한 해외여행이라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이었으니 공항을 올 일이 별로 없었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커다란 짐가방을 카트에 싣고 움직이는 사람들. 제복을 입은 승무원, 저 멀리 활주로 사이로 힐끗 보이는 비행기의 모습은 내게 묘한 설렘을 줬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이후 인천공항이 생겼고, 다시 김포공항을 찾은 건 부산행비행기를 타려 왔을 때다. 끝이라곤 보이지 않던 어린 시절 기억 속 공항과는 자못 달랐다. 김포 공항이 이렇게 작았나? 싶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첫 기억의 김포공항은 국제선이어서 그랬는지도.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오랜만에 김포 공항엘 왔다. 코로나가 퍼진 뒤엔 한번도 오지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온지 1년은 훌쩍 지났나보다.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222222;&quot;&gt;출발을 기다리는 비행기에 앉아서 창문 틈으로 보이는 김포공항 간판이 옛 설렘을 기억나게 했다. 지금은 흔해져버린 비행기 탑승이지만, 여전히 공항은 설레임 가득한 묘한 공간이다. &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끄적이다</category>
      <author>Dravin</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ravin.tistory.com/220</guid>
      <comments>https://dravin.tistory.com/220#entry220comment</comments>
      <pubDate>Wed, 14 Jul 2021 09:58:52 +0900</pubDate>
    </item>
  </channel>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