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4. 10:09ㆍ끄적이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스텝이 꼬일때가 있죠. 지금은 경험도 쌓이고 대처능력이 생겨 한번 꼬여 넘어져도 툭 털고 다시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직장 생활 3년차땐 많이 어설펐습니다. 3년차때 이제 일도 제법 익숙해서 자기 몫을 하기 시작할 때였고 신입 팀원의 사수가 된 때여서 살짝 기고만장 해 있었어요. ‘나 이제 일 좀 해’ 같은거 말이죠.
그러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어요. 8천부가 넘는 인쇄물에 오기가 있었거든요. 단순 오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난리가 났어요. 저는 좀 억울했어요. 인쇄물 최종 담당자는 저였기에 결과물은 제가 책임져야 했는데 제게 넘어온 정보가 잘못된 정보여서 오기가 난거에요. 많이 억울했어요. 그 정보가 맞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담당자에게 한번 더 물어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거든요.
8천부를 전부 폐기할 순 없어서 오기에 스티커를 붙이기로 결정했죠. 스티커 제작을 하고 택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인쇄물을 살폈는데, 비슷한 수준의 오기를 또 발견했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온갖 자료와 메신저, 사내 게시판을 샅샅이 뒤졌어요. 아뿔싸. 이번엔 명백한 제 오기였습니다. 실수를 했을 경우엔 빠르게, 그리고 투명하게 보고해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 당시엔 그러지 못했어요. 어떻게든 실수를 가리고 싶었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금방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보고하지 않은 죄까지 탈탈 털렸죠. 그래서 스티커를 또 만듭니다. 택배로 받을 시간이 없어, 인쇄소로 달려갔어요. 초겨울이었는데, 스티커를 기다리는 한시간 동안 충무로 인쇄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얼마나 춥던지요. 기온이 그리 낮은건 아니었는데도, 바람이 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어요.
스티커 16,000장을 받아들고, 명동을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그 와중에 배가 고프더라고요. 나 자신에게 어이가 좀 없긴했는데, 뭔가 또 짠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근처에 보이는 식당엘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곰탕 하나뿐이었어요. 한그릇 주문해 파를 한줌 넣어 국물을 먹는데, 따수운 국물 한모금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어요. 그러던 갑자기 말로 할 수 없는 서러움 같은게 밀려왔어요.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던게 부끄럽기도 하고 모든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곰탕 국물이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는 기분이랄까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가게 이름을 봤습니다. 하동관이라는 이름이 보였어요. 그땐 곰탕에 무지해 하동관을 몰랐죠. 곰탕 세계의 정점에 서있는 식당이란걸요. 그 뒤로 틈만나면 곰탕을 먹으러 갔어요. 합정옥, 옥동식, 양평옥, 나주곰탕, 파주옥…
사실 최근에는 시오라멘에 꽂혀있습니다. 요샌 틈나면 시오라멘 투어를 갑니다. 도장깨듯 한집씩요. 뭐 먹을까? 하면 시오라멘 할정도로요. 같은 시오라멘도 면과 차슈, 고명에 따라 너무 다르고요. 반찬으로 뭘 곁들이냐에 따라 또 다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반찬은 초생강이에요.
그치만, 정말 지치고 힘들 때, 찾는건 역시나 곰탕이더라고요.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이랄까요. 언제 다 같이 뜨뜻한 곰탕 먹으러 가실래요?